2024년 4월 6일
고립무원 : 남과 사귀지 않거나 남의 도움을 받을 데가 전혀 없음
우테코에 들어오기 전까지 공부하던 환경을 표현한 사자성어이다.
2년 가까이 홀로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일절 없었다.
주변의 권유나 환경이 아닌 온전히 재밌어서 개발을 선택했기에 이는 당연했다.
소통이라고 해보았자, 비대면으로 2~3주 간격으로 뵙는 선생님께 궁금한 부분을 여쭤보는 정도였다.
그래서 같이의 가치
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열망했다.
마냥 신기루처럼 느껴지던 우리 팀
이라는 곳에 소속되어 함께 성장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테코는 간절했고 감사하게도 합격했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드디어 밖으로 나아갈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테코 내에서의 학습 환경과 내가 지금껏 견지해오던 학습 방식에서 큰 괴리감이 들었다.
인사조차 나눠 본 적 없는 크루원들이 수업 중 내가 남긴 질문을 보는 것부터 부담감을 느꼈다.
또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다른 크루원들에게 물어보려다가도 본능적으로 이를 삼켰다.
그렇게 바라던 환경에 속하게 됐음에도 능동적이지 못하다.
도대체 왜일까?
곱씹어보다가 깨달았다.
개발을 또 나와 동일시 하고 나만의 바운더리를 만들어놨구나.
돌이켜보면 음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작곡을 성인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 “내가 나로 살아간다.” 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만큼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를 사랑했다.
자연스럽게 음악과 나 자체를 동일시 했고 매번 엄격한 자기 검열을 수반했다.
작업물이 불만족스럽다면 이는 곧 나에 대한 결핍으로 이어졌다.
그만큼 욕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부분에서 내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을 용납 하지 않았다.
나에게 질문은 "전 이 정도로 못난 놈이에요."라고 말하는 자기학대였다.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행위 자체를 회피했다.
시간이 한참 걸리더라도 모르는 부분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한다면 스스로 해결했다.
또 알고 있는 부분을 나누는 행위에 굉장한 어색함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앎
을 얘기한다는 것은 내 고유한 영역을 상대방에게 내주는 행위였다.
이때는 이러한 방식이 나만의 주관을 가진 능동적인 행위라 오판했다.
시들다 못해 썩어가는지도 모르고 내 뿌리가 더 깊어진다고 확신했다.
"사랑하면 다친다."라는 말처럼, 음악에 관한 삐뚤어진 소유욕은 비대해지다 못해 결국 터져버렸다.
인생에서 가장 큰 번아웃이 찾아왔다.
도움을 청할 사람은커녕 이 힘듦을 털어놓을 사람조차 없었다.
혼자서 해내겠다는 생각으로 뒤덮인 오만함은 너무도 당연히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주변에 동료 하나 없이 나아갔듯이, 결국 홀로 남게 됐을 때 또한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이 번아웃을 이겨내지 못한 채 방황하는 과정에서 개발을 접했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몰입
해보고 싶다고 느낀 분야였다.
하지만 음악과는 다르게 의도적으로 거리감을 두었다.
음악처럼 최대한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서 온종일 시간을 쏟아붓지 않았다.
힘들면 공부를 건너뛴 날도 많았고 짧은 강의를 한 달에 걸쳐서 들었던 적도 있다.
어차피 공부해야만 하는 양이 많다고 판단했다.
얼른 뭔가 이루려고 하기보다 취미로 즐기면서 천천히 스며들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번아웃 한번 없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테코에 와서는 이젠 쏟아부어야 할 때
라고 내심 생각했나 보다.
본인도 모르게 나와 개발을 동일시 하는 마음가짐을 서서히 내재화했다.
하지만 우테코를 넘어서서 개발을 하면서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언젠가 학습했던 단계적 자아
를 되새겼다.
현재 개발에 관한 나만의 자아를 만드는 과정이고 당연히 부족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유아기에 불과하며 이 자아를 성장시키기 위해 우테코에 들어왔다.
우테코 생활 중간중간 불편함이 고개를 들 때마다 위의 문구들로 자기암시를 했다.
이러한 다짐은 수업에서의 적극성을 개선해주었다.
수업 중 질문을 남기거나 코치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여쭈어보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동료들과의 자유로운 대화까지 해결해주진 못했다.
동료들에게 의견을 묻거나 물어보기 전에, "내가 질문을 해도 될까?"라는 괜한 걱정이 발목을 잡았다.
역설적이게도, 동료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극복하게 해준 건 동료들이었다.
우테코에선 매주 월요일마다 1주일 회고를 한다.
약 30분간 저번주의 본인을 돌아보며 같은 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지니고 있던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다른 크루원들도 나와 같은 똑같은 고민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곤 내 자신을 반성했다.
내가 개발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우테코에 왔듯이, 크루원들도 마찬가지임을 등한시했었다.
어떤 크루원은 나보다 더 높은 온도로 개발을 대하고 있을 수 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어쩌면 쉴새 없이 개발 얘기를 하고 싶을 수 있다.
이후 크루원들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은 가벼워졌고 혼자서만 지어놓았던 바운더리는 무너졌다.
미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 했다면 바로 고개를 돌려서 질문했다.
문제 상황에만 국한 되지 않았다.
나아가서 "동일한 요구사항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싶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동료들에게 질문함으로써 비워져 있는 책장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더 이상 질문은 나에게 채찍
이 아니었다.
더 많은 질문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영양분이 되었다.
우테코를 시작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이제 수료 과정의 10% 남짓을 지나간다.
수료까지는 많이 남았고 배운 것보다 배워가야 할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이미 개발을 넘어선,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배웠다.
지금까지는 스스로가 자초하며 동굴로 들어갔다.
하지만 동료들 덕분에 비로소 진짜 밖
으로 나올 수 있었다.
라쇼몽의 작가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유명한 구문으로 이 글의 마지막을 갈음한다.
혼자서는 작은 한 방울이지만, 함께 모이면 바다를 이룬다.